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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ING

정조대왕의 꿈을 기리다…‘수원화성문화제’ 이모저모

이산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원조 신도시 ‘수원’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을 춘다’는 수원시 팔달산 일대
수원화성문화제의 꽃, ‘정조대왕 능행차’의 의미
시민들이 함께 재현하는 역사의 한 장면, ‘배다리 시민체험’


[리버럴미디어=강한별 기자] 매년 수원시에서 정조대왕의 효심과 화성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수원화성문화제(22일~24일)’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정조대왕의 꿈과 이상향이 담긴 원조 신도시 ‘수원’에서 정조대왕의 효심과 화성을 기리기 위해 1964년부터 개최된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축제다.

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정조대왕 능행차’다. 수도권을 연결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왕실 행렬로 수백명의 행렬단과 말의 퍼레이드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웅대한 장관을 연출한다.

‘수원화성문화제’가 기리는 수원시와 화성의 역사, 정조대왕의 꿈과 능행차에 담긴 의미와 함께 화성문화제의 관람포인트를 소개한다.

◇ 이산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원조 신도시 ‘수원’


동탄이나 광교, 분당 등 오늘날의 신도시는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나 도심기능을 분산하고, 지역개발 차원에서 1960년대 이후 개발되었다. 넓은 의미로 ‘신도시’란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이미 ‘원조 신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정조의 도시 ‘수원’이다.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가 노론의 희생양이 되어 친아버지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고, 11세의 어린 나이에 동궁이 된 정조는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급작스러운 사도세자의 죽음에 2개월 반만에 장례가 치러지고 당연히 묘소는 형편없었다. 사도세자가 역적으로 죽었기에 영조는 정조의 정통성을 위해 형식상 사도세자와 정조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24세가 될 때까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뵙지 못한 정조는 초라한 묘소 앞에서 대성통곡하다가 혼절까지 했다고 하니, 그 맺힌 한이 얼마나 컸을지 느낄 수 있다. 왕이 된 정조가 지금의 취임사와 같은 첫 번째 윤음(綸音)에서 먼저 한 말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아버지가 정치적 희생양이었다고 인식한 정조는 사도세자의 명예회복과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명당으로 옮기고, 비통한 아픔의 기억이 서리고 있는 서울이 아닌 새로운 곳에 자신의 이상향을 담은 신도시 건설을 계획한다.

 


◇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을 춘다’는 수원시 팔달산 일대


수원시 팔달산 일대는 풍수지리상으로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을 춘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수원부는 조선 초기부터 선조와 효종의 능터로 지정된 최고의 명당이었다. 또, 충청·경상·전라도로 통하는 육로 및 해상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는 서울을 지키는 남방의 요새지였다.

정조 13년,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남쪽의 화산(지금의 화성시 소재)으로 옮기고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겼다. ‘수원신도시’의 시작이다.

‘수원신도시’는 서양의 건축기술과 중국의 성곽제도를 배워와 우리 현실에 맞는 성곽도시 화성을 건설하고 그 주민들은 ‘집집마다 부유하고 사람마다 화락하는’ 낙원도시를 만들겠다는 정조의 꿈과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담긴 ‘정조의 도시’다.

 


◇ 수원화성문화제의 꽃, ‘정조대왕 능행차’의 의미


정조는 조선 시대 어느 임금보다 행차가 많았다. 재위 기간 24년 동안 경기도에 있는 왕릉을 방문한 횟수는 66회이다. 이 가운데 31회는 사도세자의 능을 방문했다고 하니 정조의 효성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조대왕의 행차가 의미있는 이유는 그 횟수와 효심 때문만이 아니다.

정조는 자신의 행차를 단순한 행차가 아닌 행행(幸行)으로 표현했다. 그 이전에 백성들은 국왕의 행차를 위해 세금을 내고, 행차 길을 닦는 등 귀찮고 힘든 일이었는데다가 마음대로 볼 수도 없었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백성들과 직접 대화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위로했다. 미리 현지에 보낸 관리들의 보고에 따라 민원을 처리하게 했다. 또, 능행시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제도를 활성화했다. 상언은 상소문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정조는 글을 배우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임금의 행차 길에 행차를 막고 억울함을 말하는 ‘격쟁’을 자연스럽게 시행하도록 했다.

정조는 능행 중에만 상언과 격쟁 3355건을 받았고 환궁하여 직접 읽고 모두 해결 지시를 내렸다. 때문에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알려지면 전국의 억울한 백성들이 능행길에 참여했고 정조의 능행차 관람을 관광(觀光)이라 불렀다. 밝은 빛을 보기 위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번 ‘정조대왕 능행차’에서 이같은 정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격쟁(擊錚)의 현장이 재현된다. 23일 토요일 서울 구간에서는 12시 45분 노들섬에서 진행된다. 24일 일요일에 안양 구간에서는 10시 30분 안양역, 의왕 구간에서는 오후 1시 5분 의왕 기아자동차 앞에서 진행된다.

 

24일 수원 구간에서는 오후 6시에 행궁광장에서 1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출연진이 역동적이고 생동강 넘치는 격쟁 현장을 재현한다. 또 24일 화성 구간에서는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 입구에서 오후 1시 50분에, 격쟁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사전 신청한 시민들이 무대에 직접 올라와 정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호소하는 '현대판 격쟁'이 연출된다.

 

'2017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을 연출하는 곽선근 총감독은 “전문가의 고증·자문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능행차를 재현하겠다”고 밝혔다.

◇ 시민들이 함께 재현하는 역사의 한 장면, ‘배다리 시민체험’


화성행차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가장 안전한 배다리를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정조는 신하들과 함께 직접 배다리 건설을 위한 치밀한 설계안을 구상했다.

한강의 배다리 건설은 처음에는 20일을 예상했으나 11일 만에 완성되었다. 정조의 계획대로 기술이 크게 보완되고 치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들강변에 웅건한 배다리가 이처럼 단기간에 건설된 것은 최초로, 조선시대 다리역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놀라운 일이다.

이번 화성문화제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배다리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한다. 23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배다리 시민체험’이 진행된다. 시민들이 직접 배다리를 건너는 체험을 하고 현장에서 즉석사진도 찍을 수 있다.

또 이날 12시에는 장용영 군사들이 정조대왕의 행차가 배다리에 도착했음을 알리며 배다리의 안전시공을 점검, 먼저 건너는 의식인 ‘배다리 시도식’이 재현된다.

수원·서울·화성시가 공동주최하는 올해 능행차 재현(9월 23~24일)은 ‘소통과 나눔, 그리고 공감’을 주제로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을 거쳐 융릉까지 이어지는 59.2㎞ 구간에서 이뤄진다.

23일에는 창덕궁에서 시흥행궁 구간(21.24㎞)에서 행렬이 이어지고, 24일 서울 금천구청에서 연무대 구간(26.4㎞)과 화성행궁에서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에 이르는 구간(11.6㎞)까지 능행차가 재현된다.

이번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정조대왕의 꿈과 효심을 기리고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역사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 강한별 기자 lelia0904@libera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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